2000 년 광덕 한암사 시절에 선심화보살은 대덕화보살이 인도해 왔습니다.
삐쩍 마른 몸에 얼굴은 누렇게 뜬 데다 이를 하얗게 벌리고 웃고있더군요.
아침에 그런 모습을 보니 괜히 언잖아 졌습니다.
그 당시 대덕화의 모습은 열흘 굶은 송장메뚜기 같았는데 그러 사람이 쌍으로 왔으니 가슴으로 소름이 찌르르 당겨왔습니다.
나는 나도 모르게 "어디 살아요?" 하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난데 없이 "미녀유!" 하고 대답하는 겁니다.
나는 너무 놀라 다시 물었지요.
"나이가 어때요?" 하고 엉뚱한 물음을 던진 것입니다.
"사십은 안 됐어요." 하는 것이었지요.
대답하는 모습이 이상해 나는 다시 물었습니다.
"뭐라고 하시는 거요?"
"저는 미녀에요!"
순간 나는 대덕화를 보며 엄청 화를 내기 시작했습니다.
그 당시의 대덕화는 얼굴만 봐도 언잖았는데 더군다나 완전히 돌아버린 여자를 데리고 왔으니 나도 모르게 그만 버럭 화를 낸 것이었습니다.
화를 내는 나는 얼굴이 벌게 졌는데 두 사람은 당연한 듯 빙그레 웃고만 있는 겁니다.
나는 두 사람의 모습을 보며 또 다시 놀라 사태의 추이만 보며 눈알을 데롣데록 굴리고 있었지요.
선심화와의 인연은 이렇게 시작을 했습니다.
그 얼굴에 이름이 신 미녀 라는 겁니다.
고향은 태안 이라고 했는데 그런 깡촌에서 자신의 딸을 미녀라 이름 짓다니 참으로 놀라운 일이라 생각했습니다.
'어찌 그런 엄청난 만행을 했을까. 그 부모 지독하다.' 그것이 그 때의 내 생각이었습니다.
그런 선심화가 성실한 성품에 어떤 일을 시켜도 확실히 해내는 재주를 가졌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또 다시 놀랐습니다. (그러나 선심화는 무슨 일을 하든 오래 못 가고 열정이 없으며 게으른 성격을 갖고 있었습니다.)
사실 처음부터 그렇게 된 것은 아니였죠.
그녀의 남편은 월급쟁이 였는데 월급이 백만원을 넘거나 넘지 못하는 재주가 밖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부족한 돈을 벌기 위해 돈벌이 하러 세상을 헤매야만 했습니다.
나는 그녀에게 남편이 70만원만 벌어도 버텨보라고 했습니다. (그만큼 선심화는 박복한 성격구조를 갖고 있었습니다)
자식교육을 위해 가정에 있는 엄마는 그만큼 중요했기에 내린 결정이었지요. (그렇지 않으면 세상에 나가 사기밖에 더 당하겠습니까)
엄마가 수행을 하면 마음이 맑아지고 맑아지는 만큼 자녀의 부족함이 보입니다.
부족한 부분은 대화와 화합으로 채워준다면 아이들은 보다 더 건강하게 자랄 수 있습니다.
선심화는 돈이 필요한지 세상에 나가 돈벌이를 하기 시작했습니다.(좋은 말을 쉽게 듣지 않고 유혹에 너무나 약했지요)
이삼 년이 지나자 슬며시 절에 오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절에서 일할 것을 종용했습니다.
그러데 선심화에게는 이상한 증세가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일을 시키면 하지를 않고 지하에 숨는다든지 계단에 않아 고개를 푹 수그리고 앉아만 있는 겁니다.
빨래하라면 손톱으로 옷 하나하나를 들고 수십 번 나른다든지, 공양간 가서 도우라면 멀뚱히 서있는 거였습니다.
아마 한암사에 처음 올 때 증상이 도졌는가 봅니다.
7 개월 이상을 도망다닌 끝에 결국 쫓겨나고 말았지요.
그 후 이년 이상을 절에 나오지 않았습니다.
초췌해진 얼굴로 다시 온 선심화의 얼굴은 다시 돌아오지 못할 음산한 눈빛과 몸에서 풍기는 표독한 맛을 감은 채 돌아왔습니다.
나는 법당관리를 맡겼습니다.
천배천일기도를 시작하라고 했습니다.
차차 안색이 돌아오면서 얼굴이 펴지기 시작했습니다.
3 년이 지나자 얼굴에서는 불심이 묻어오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은 선심화를 다시보기 시작했습니다.
언젠가 큰스님이 왔는데 선심화를 보고는 "어이구 보살 공부 많이 하셨네!" 하는 말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의외의 사실에 아주 놀랐지요.
시간이 갈 수록 선심화의 몸에서는 성스러움이 묻어오기 시작했습니다.
어느 날 사무장이 선심화에 대해 좋은 소식을 알려 왔습니다.
(내게는 묻어 두었지요)
그의 아빠가 간절히 소원하던 사업을 인수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일년에 수억 이상의 순수입을 보장받는 사업이니 당연히 축하할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나는 걱정이 되었습니다.
선심화가 처음 절에 와서 지금까지의 과정이 파노라마처럼 스쳐가는 것이었습니다.
불자들은 불행할 때 절에 와서 행복을 얻으면 슬며시 사라지기도 하지만 나나 절에 그여코 해코지를 하면서 사라졌지요.
한암사 불교문화원을 지면서 돈이 부족하자 신도들은 가진 핑게를 대면서 사라졌습니다.
선심화의 맑은 얼굴을 보면서 사라진 신도님들이 생각났습니다.
그 때 한 불자가 생각났습니다.
가난 할 때는 내가 하나님이라도 된 듯이 백팔배 절을 하면서 서울까지 찾아와 살려달라고 애원을 하더니, 몇 년 후 기도를 해 복을 받았는지 수십억의 돈을 벌었습니다.
그 후 신도 특유의 짓이 살아났지요.
부산에도 없고 서울에도 없으며 전라도 경상도 강원도에도 없는 충청도 특유의 짓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녁에 만나자고 하더군요.
나를 죽일려고 칼을 갈아서는 길거리를 서성거리는 것을 봤습니다.
어떤 분은 내가 자신을 너무나 사랑해서 마음이 무겁다며 오지를 않았지요.
그 분은 내가 집을 직접 져주기도 한 분입니다.
그 옆의 언니는 증권에 투자했다가 완전히 망하는 순간 내가 멈추고 옷장사에 투자하라고 해서 얼마의 투자금을 회수하고 잘살게 되었습니다.
한암사가 부담스러운 그녀는 내게 전화를 했습니다.
스님이 그 보살을 버리면 안 된다는 거였습니다.
나는 도데체 모를 4 차원의 소식을 듣고 왠소린가 했습니다.
집져준 여자는 남편도 있고 자식도 있으며 아들은 내 유발상좌 였습니다.
빚을 진 한암사가 벌이는 운명적인 만행이었습니다.
그러던 중 뭔가가 움직이기 시작 했습니다.
거기에는 선심화도 청련화도 다 끼어 있었습니다.
그들은 그 동안 만든 신도들에게 영향을 줘 모두가 등을 돌리게 되었지요.
그 여파로 가난하고 별 볼일 없는 사람들이 남았습니다.
남은 사람들은 한암사 신도라고 볼 수도 없는 사람들이었지요.
반야심경이 뭔지 불심이 뭔지도 모르는 사람들만 남았습니다.
2003 년 초파일 법당 등 시주를 받았으나 몇 등에 불과했습니다.
2004 년이 되니 백 등에 가까워 졌습니다.
사실 이 년 동안 켜진 등은 몇 등이 안됩니다.
모두 주지인 내가 자작극을 한 결과일 뿐입니다.
다 사라진 한암사의 신도는 그런 사람들의 어처구니 없는 말에 영향입어 오지 않은 것이지요.
그러나 사실은 돈이라는 묵계적 암계가 그들을 지배한 결과일 뿐입니다.
대한민국 사람이 내돈 들어가는데 좋아할 사람이 어디있겠습니까.
돈이라면 부자도 모녀도 없는 사람들이 아닙니까.
그런데 사찰이야 획 하고 던지면 되는 겁니다.
아마 그들이 이 말을 읽고 또 그 짓을 하겠지요.
이제 한암사는 성지가 됐습니다.
팔만사천 신중이 호위하는 성전입니다.
그것을 그들과 불자들에게 말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세상은 정의가 꼭 이긴다는 사실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이 주지는 단 한 번의 실수를 절대로 용서하지 않는 다는 사실을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그것이 중으로써의 지키려는 마지막 계율입니다.
이것이 대한민국 불교의 어두운 단면입니다.
스님은 불자를 믿을 수 없고 불자는 스님을 믿을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인생사 다 그런 것 아닐까요.
다시 옛날의 그 짓들을 되돌아 봅니다.
너무 속상하고 너무나 고통스럽습니다.
간과 쓸개를 다 녹여버린 일들이 주마등같이 스칩니다.
갈려면 조용히 가지 왜 바보짓을 하고 가는지...
천도재를 지낸다고 하면서 예약금 50 만원을 주고 나머지는 돈 없다며 떼먹고 가고는 그 후 버젓히 자신의 어머니 사십구재를 지내는 사람들.
부인이 절에 열심히 다니자 내게 와서 이혼하겠다는 수많은 사람들.
대부분 그들의 전부는 고학력 상류직업을 가진 사람들이었습니다.
내 생각에 선심화는 신심을 얻었다 자신합니다.
그러나 그녀는 중생입니다.
전에 절에 와서 아픈 스님의 빨래를 하나 하나 날랐고 일을 시키면 하루 종일 계단에서 잠을 자고 지하실에서 조용히 쉬면서 월급을 또박또박 받아가던 사람입니다.
요즈음 그 녀를 봅니다.
나는 사람들을 빨간 원숭이라고 부릅니다.
아 원숭이들아 잠을 자거라.
그녀는 확실히 달라졌습니다.
그 토록 힘이 세던 선심화가 기운이 없어서 법당에 놓여진 초 한 박스를 3 일 채 놔두고 있습니다.
주지는 그 짓을 보고 말했습니다.
"밥 좀 먹으니까. 왜 힘이 없어? 이제 한암사 안 올겨. 난 그 날을 기대 혀!"
돈 좀 번 신미녀가 가난한 청련화에게 한마디 합니다.
"니 남편은 박복해서 백날해야 가난 절대로 못 면해"
그토록 겸손하던 선심화가 얼굴에서 힘이 나면서 부시시 웃지 않고 배시시 웃을려고 합니다.
절에 자신 만큼 소득을 올리는 보살들을 유심히 살펴보고 있습니다.
공얀간에 들어가는 꼴을 볼래야 볼 수가 없습니다.
시간만 나면 퇴근을 합니다.
퇴근 시간은 다섯 시였는데 지금은 오후 두 시로 바꼈습니다.
아마 얼마 후 그 녀를 볼 수 없을 겁니다.
선심화가 아닌 신미녀가 되겠지요.
사람의 본성이 수행한다고 달라질 까요.
얼굴이 맑아지고 성스러워졌다고 달라질까요.
여러분! 이번에 선심화를 보면서 그의 진면목을 가려봅시다.
일상의 본면목이여
모든 모양있는 것은 무상하다네
만고의 풍상에 깍이지 않는 소식이 있으니
바람 불고 낙옆지니 그 곁의 일일 뿐이네
그 곁의 소식이여
할! 그 소릴 한 번 던질 뿐
강태공이 낚시대를 던지던 속스러움은 없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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