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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담 39-선생님이 살인당했다

글쓴이 : 이 옥 향 날짜 : 2010-07-20 (화) 16:50 조회 : 1065
그때 나는 아홉 살 겨울이었다
군대 제대한 교장선생님의 아들하고 친하게 지냈다.
그 날 집에 놀러 가보니 아들은 아침부터 소주를 먹기 시작했다.
사실 우리 아버지가 뭔가 낌새를 챘는지 나를 그 집에 보냈다.
그리고는 "수상하면 나한테 와라!" 하시는 것이었다.
그 말은 부부싸움을 하거나 두 부부의 분위기 상 뭔가 큰일이 날 것 같으면 아버지에게 와서 일르라는 말씀이셨다.
나는 소주만 입에 들이 붙드시 먹는 아들을 보며 "아저씨 술먹지마" 하며 말렸다.
그 때 나는 아버지에게 갔어야만 했는데 아들과 친하다 보니 내 손에서 처리가 될 것이라 고 생각 했었다.
그러나 나의 방심이 얼마나 어리석은 짓이었는지 세월이 많이 흐른 후에야 알게 되었다.
그 날 너무 괴로워하는 아들과 "절대 그러면 안돼" 하며 달래는 부인을 뒤로하고 집으로 왔다.
아버지에게는 별일이 없다고 말하고는 이불 속에 들어가고 말았다.
그러나 엄청 불안했다. 잠이 도무지 오질 않았다.
뭔가 일이 생겨도 단단히 생길 것 같았다.
그날 새벽 동네에는 경찰차가 여러 대가 왔고 천안 시민도 반 쯤은 온 것 같았다.
교장 서생님과 그의 부인이 칼에 찔려 죽었다는 것이었다.
교장선생님네 가보니 아들이 문 위에 올라가 고함을 치고 있었다.
"나 좀 죽게 해주세요. 이 죄인은 죽어야만 합니다. 나는 아버지를 죽인 죄인이라고요!"
문 앞에는 경찰이 아들을 달래고 있었다.
아저씨는 문 위에 창처럼 밖아 논 철창에 목을 대고 누르려 하고 있었고 동네 사람들은 이를 저지하고 있었다.
하얀 옷을 입은 사람들은 들것에 시체 두 구를 들고 가고 있었다.
나는 "아저씨!" 하고 불렀다.
아들은 못들은 척 했다.
"제가 잘못했다고요!"하고 소리쳤다.
아들이 못들은 척 하자 나는 계속 내가 잘못했다고 외치면서 울었다.
아저씨는 "석동아..." 하고 말을 못 잇더니 대문에서 내려와 오랏줄을 받았다.
내려 와서는 내 머리를 쓰윽하고 쓰다듬더니 씨익하고 웃어주었다.
나는 아들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작년 가을 아저씨의 아들이 굶어 죽었다.
죽은 아들은 나와 가장 절친한 친구였었다.
아들의 부인도 아주 예뻤다.
그래서 더 병골인 아들과 친하게 지냈다.
아저씨의 아버지인 박교장은 새장가를 들었는데 새마누라 말만 들었다.
박교장은 평소 너무나 젊잖었었다.
걸음도 아주 천천히 걸었고 웃음도 어설프게 "하하하" 웃었다.
하는 행동이 인조인간 같았다.
그의 부인 즉 아들의 엄마가 큰 병으로 몸져 누어 있었다.
그래서 그는 늘 외로워 했다.
밤 늦도록 석양을 보았고 사람들을 보면 엄청 외로운 척을 했다.
동네 사람들은 "저 양반 곧 장가 가것구먼"
"짐승은 속여도 사람 눈은 못 속이는디."
"쯧쯧쯧 선생이라 순진혀서 그렇지..."
동네 사람들 말대로 부인이 죽자 며칠이 안돼 새부인을 맞았다.
새부인은 박교장이 다니는 학교의 선생이었다.
사람들은 늘 준비가 돼 있었다고 떠들었다. 
박교장이 장가를 간 뒤 얼마 후 아들은 군대를 갔다.
군대를 가면서 아들은 새어머니에게 부인과 병약한 손자를 부탁한다고 거듭 거듭 부탁했다.
그 후 그의 부인은 그 날부터 새어머니의 식모노릇을 했다.
목욕물 데우고 날마다 이불빨래 하고 그것도 모자라 농사까지 지으라 했다.
밥도 주지도 않고 돈도 주지도 않는 바보 식모였다.
부인은 살기위해 집을 나왔다.
나는 그 과정을 모두 보았다.
손자는 병이들었는데 그 원인은 못 먹어서 온 병이었다.
동네 사람들은 소고기 한 근만 사줬어도 아이는 죽지 않았을 거라고 말했다.
박교장의 새 부인은 며누리를 철저히 괴롭혔다.
그 당시는 여자가 외출도 못했고 직업은 감히 갖지도 못했지만 직업을 가질 일거리도 없었다.
아이들 먹일 쌀이라도 얻고자 새어머니에게 가면 집에 가두고 두두려 팬 다음 몸을 묶어 가두어버렸다.
그러니 시댁에 가는 일은 생각도 못하고 동네를 돌아다니며 빌어먹었다.
그러나 그 당시는 모두들 너무나 가난했다.
결국 내 친구인 첫째가 죽은 것이다.
그 후 얼마 있다 남편이 군대에서 재대해 오자 아이가 어디 있나 물었고 일주일 만에 사실을 고백했다.
아저씨가 아버지인 박교장에게 물으면 전혀 몰랐다고 하고 오르지 새마누라 편만 들었다.
그 날도 박교장에게 가 사과를 받으러 갔다가 박교장에게 따귀를 맞고는 화가 치민 끝에 사고를 치고 만 것이다.
동네 사람들은 진정서에 서명을 하고 경찰서에 찾아가 선처를 빌었다.
그 아저씨는 5 년 형을 받았다.
출감하던 날 동장이셨던 아버지에게 찾아왔다.
그 날 그는 이런 말을 했다.
"따뜻한 말 한마디 면 세 사람의 생명이 살았는데... 죄송합니다 동장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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